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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식사전

북한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요용어를 그 유래와 의미를 사전방식으로 설명하였습니다.

2021년 발간된 책자의 내용을 웹 버전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책자원본은 자료마당 - 도서자료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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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 5대 강령

연구개발과

2022-07-01 10:09:30.0

조회531

조국통일 5대 강령?

조국통일 5대 강령?은 김일성이 1973년 6월 23일 체코 공산당 제1서기 후사크를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발표한 통일 강령을 말한다. 주요 내용은 남북 간 군사적 대치상태 해소와 긴장 완화, 남북 간 다방면의 합작과 교류 실현, 대민족회의? 소집, 고려연방공화국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 실시, 고려연방공화국 단일국호로 유엔 가입 등이다.

배경

북한은 1970년대 세계적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자 유엔에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갔다. 그동안의 외교정책을 바꾸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5개국과 수교하였고, 각종 유엔 산하기구와 WHO 등 전문기구에 가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베트남 전쟁이 종결단계로 접어들고 미국이 대아시아 개입정책으로부터 전환을 추진하는 데 따라, 한반도 문제를 민족 내부의 문제로 부각시킴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얻어내고 ‘남조선 혁명?’의 여건을 성숙시킬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김일성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고 김정일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무력 경쟁 중지와 군대 감축 등 평화공세를 펴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겨냥하는 한편, 한국이 유엔에 가입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그 이전까지 통일방안으로 제시하였던 ‘과도적 연방제’를 수정하여 국호를 ‘고려연방공화국’으로 하고 이 단일국호로 유엔에 가입하자는 새로운 입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주요 내용

조국통일 5대 강령?의 주요 내용은 ① 남북 간 군사적 대치상태의 해소와 긴장상태 완화 ② 남북 간 다방면적인 합작과 교류의 실현 ③ 남과 북의 각계각층 사람들과 정당·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는 대민족회의? 소집 ④ 고려연방공화국의 단일국호에 의한 남북연방제 실시 ⑤ 단독 유엔가입 반대 및 고려연방공화국 단일국호에 의한 유엔가입 등이다.

특히 ①항과 관련하여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 조치로 무력증강과 군비경쟁의 중지, 모든 외국군대의 철거, 군대와 군비의 축소, 외국으로부터의 무기 반입 중지, 서로 무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때까지도 북한은 평화협정?을 남북 간에 체결하는 것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추구하고 ‘평화문제는 북·미 간에, 통일문제는 남북 간에’ 협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것은 1974년에 들어와서이다. 또 하나는 1960년대와 내용이 달라진 연방제를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남북한 정부대표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라는 기구가 없어지고 그 대신 군중집회 형태의 ‘대민족회의?’를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국호만 제시되어 있지 연방정부와 지역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단일국호로 대외활동을 제안한 것으로 볼 때 지역정부의 독자적 활동은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후 남한의 ‘6.23선언’이 ‘2개 조선’을 획책하는 분열주의 노선이라고 맹비난을 하였다. 그러면서 ‘6.23선언’을 빌미로 남한이 ‘7.4남북공동선언’을 완전히 뒤집어엎었다고 주장하고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와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 간의 대화를 중단시켜 버렸다.

북한은 1970년대 내내 대민족회의? 개최 등 조국통일 5대 강령?에 입각한 조치들을 남북대화를 재개시키는 조건으로 내걸거나 대남 제의를 해오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이와 함께 북한은 1970년대 중반 이후 8·15 경축식장 대통령 저격사건, 대남침투용 땅굴? 굴착,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등 다시 대남 도발을 지속함으로써 남북관계는 긴장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평가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북한은 동서 긴장완화 등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남한의 남북대화 제의에 호응해 오는 한편, ‘남조선 혁명?’ 투쟁을 지속하는 양면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점에서 조국통일 5대 강령?은 평화공세의 일환으로 남북 간의 실질적인 화해·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제의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조국통일 5대 강령?은 남한의 유엔 동시가입 주장을 비난하고, 연방제 통일 등을 주장하면서 북한이 통일지향적인 것처럼 대외적으로 선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주한미군? 철수, 대민족회의? 소집 등을 주장하며 남한에서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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