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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식사전

북한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요용어를 그 유래와 의미를 사전방식으로 설명하였습니다.

2021년 발간된 책자의 내용을 웹 버전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책자원본은 자료마당 - 도서자료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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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마운동

연구개발과

2022-06-30 16:33:57.0

조회797

천리마운동?

천리마운동?이란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 건설에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의미로 사용되는 사회주의 노력경쟁운동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사회주의 생산경쟁운동 형태로 시작된 천리마운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북한에서 ‘사회주의 건설과 혁명을 촉진하는 강력한 추동력,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이 되었다.

배경

북한에서 천리마운동?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였다. 당시 북한은 전후 복구건설 시기를 막 벗어나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매진할 때였으나, 1950년대 말부터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원조가 줄어들어 경제 건설의 재원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또한 경제 건설노선을 둘러싸고 소련의 간섭이 계속되었는데, 소련은 1955년 김일성의 소련 방문 당시 경제 건설 방향을 중공업 우선정책에서 경공업과 소비재 생산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여전히 전쟁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소비재 부족과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과제가 제기되었다.

1956년 당시 김일성은 전원회의를 통해 “당 일꾼들은 군중 속에 깊이 들어가 대중의 창발성을 최대한 발동시켜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기한 내에 완수하자”고 제기했으며, 직접 강선제강소에 현지지도?를 나가 노동자들에게 혁명적 열의를 강조했다. 그 결과 강선제강소 노동자들은 당초 6만 톤의 생산계획을 생산경쟁운동을 통해 12만 톤으로 초과달성하게 되고, 이것이 모태가 되어 천리마운동?이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주요 내용

1956년 12월 전원회의 이후 강선제강소에서 시작된 천리마운동?은 평남청년탄광돌격대, 강계청년발전소돌격대, 청년철도건설돌격대 등 노력동원과 속도경쟁을 통한 대중적 운동으로 확대·발전되었다. 특히 이들 돌격대?의 노동강화운동을 모범으로 삼아 발달된 이 운동은 195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생산혁신자대회’를 계기로 북한 전체근로자의 노력경쟁운동으로 본격화되었다.

북한은 천리마운동?을 단순한 증산운동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공산주의 인간형의 창조를 목표로 한 사상개조운동으로 활용했다. 공장·기업소·협동조합 등 좁은 의미의 생산현장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사회주의 건설에 있어 당의 총노선으로까지 격상시켰으며, 개인 간의 경쟁이 아닌 작업반·직장·공장단위의 집단적 경쟁과 혁신운동으로 발전시켜 이후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연결시켰다.

이 운동의 전개로 제1차 5개년 계획(1957~1961년)은 전 부문에 걸쳐 예정보다 빠른 2년 6개월 만에 목표를 달성하였고, 목표를 초과 달성한 사람에게는 ‘천리마기수’, 성과를 낸 집단이나 조직에는 ‘천리마작업반’이라는 명칭을 부여했으며 뛰어난 성과를 낸 사람들에게는 영웅 칭호가 주어졌다. 천리마운동? 과정에서 ‘천리마작업반’뿐만 아니라 ‘천리마학교’, ‘천리마직장’도 생겨났다. ‘천리마체조’, ‘천리마조선’ 같은 조어들도 탄생했다. 천리마처럼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듯한 느낌의 글자체 ‘천리마체’까지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천리마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전체를 관통하는 북한 사회의 모든 것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운동의 한계성에 따라 천리마운동?이 퇴색하는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1976년부터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이라는 이름의 경쟁운동으로 전환되었고, 이후 ‘80년대 속도’, ‘90년대 속도’ 등의 구호가 내걸리기도 했다. 1999년부터는 ‘제2의 천리마대진군’의 구호로도 변형되기도 하였으며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만리마속도창조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평가

천리마운동?은 기본적으로 대중의 혁명적 열의와 높은 창의성, 그리고 자기희생의 헌신성을 끌어내는 운동이다. 이런 대중적 열정을 유발하기 위해서 제일 역점을 둔 것은 도덕적 자극이었다. 즉 유인동기를 물질적 보상보다는 노동자의 명예심과 도덕적 양심을 끌어내는 방법으로 삼았다. 결국 이것은 천리마운동?이 사람의 의식을 교양·개조하는 사상교양사업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부단한 정치사상교양만으로 노동생산성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방법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자본투자와 기술혁신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은 채 노력동원과 속도경쟁에 기초한 경제 건설방식은 초기에는 비약적 성장을 가져올 수 있지만, 점차 피로도 증가와 한계생산체감의 법칙에 의해 성장이 한계에 직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천리마가 만리마로 대체되는 등 운동의 상징성이 변화하다가 제8차 당대회 이후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수사로 ‘전후복구시기’와 ‘천리마정신, 천리마운동?’이 다시 언론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공공누리의 제 4유형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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