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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식사전

북한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요용어를 그 유래와 의미를 사전방식으로 설명하였습니다.

2021년 발간된 책자의 내용을 웹 버전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책자원본은 자료마당 - 도서자료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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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전

연구개발과

2022-06-30 11:29:28.0

조회470

속도전?

북한의 속도전?이란 모든 사업을 전격적으로 밀고 나가 최단기간 내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최상의 성과를 이룩해 나가는 사업방식이다. 속도전?은 전격전, 섬멸전을 기본원칙과 방법으로 삼고 있는 기본적인 전투형식으로 사상혁명, 기술혁명, 조직지도사업의 세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이 가운데 기본은 사상혁명이다.

배경

북한의 속도전?은 기술, 노동력, 자본, 설비, 노동의욕의 부족을 근로자들의 혁명적 열의를 최대한 동원하여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그 시초는 천리마 운동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1956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는 구호를 제시하고 빠른 속도와 높은 질을 담보하는 천리마운동?을 발기하였다. 이때 제기된 ‘천리마속도’에 이어 1950년대 말부터 각 부분에서 ‘평양속도’, ‘비날론속도’, ‘강선속도’를 강조해왔다.

원래 ‘○○속도’라는 명명은 어느 한 생산부문에 집중하여 높은 효율의 생산결과가 나왔을 때 이를 모범으로 삼아서 북한 사회 전체로 확산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속도전?이 모범사례를 넘어 새롭게 정의되고 전 사회의 작동원리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이다. 1974년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사회주의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속도전?을 ‘힘 있게 벌려 나’갈 것을 요구하였다. 이후 속도전?은 어느 한 분야만이 아니라 북한 전 사회의 모든 사업에서 전격적으로 밀고 나가는 사회주의 건설의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주요 내용

북한이 속도전?을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기본전투형식으로 명명했지만 늘 동일한 비중으로 강조하지는 않는다. 북한은 인민경제 계획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속도와 균형’의 관계를 중시한다. 일반적으로 인민경제계획? 기간에는 목표완수를 위해 속도를 강조하지만, 인민경제계획? 이후 완충기 시기에는 균형을 강조한다. 따라서 속도전?은 일정한 기간에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북한에서 속도전?이 구체적 형태로 제시된 것은 ‘70일 전투’이다. 북한은 당시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10대 전망목표를 제시하고 전 사회적으로 속도전?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자, 1974년 10월 하순부터 12월 말까지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70일 전투를 실시하였다. 후계자 김정일에 의해 추진된 70일 전투는 근로자들에게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 교양 등 사상전을 기본으로 하여 전국 2천여 개의 단위에 1만 1천여 명의 간부를 파견하였고, 12개의 중앙예술단과 48개의 지방예술단으로 구성된 경제선동대를 통해 현지 공연을 하는 등 경제사업의 높은 성과를 촉진하였다.

이 밖에도 1970년대 이후 김정일이 발기하거나 김정일과 관련 있는 것으로 주장되는 속도전식 사업방식은 3대혁명붉은기쟁취운동?을 포함하여 수없이 많다. 제2차 7개년 계획(1978~1984년)이 시작되던 해인 1978년에는 그 해의 목표를 앞당겨 달성하자며 100일 전투를 전개하였다. 1988년 2월에는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의 주요시설공사의 기한 내 완공을 위해 200일 전투가 전개되었고, 첫 번째 200일 전투가 끝난 직후 1988년 9월에는 제2차 200일 전투를 전개하기로 하여 1989년 4월까지 속도전?을 연장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도 김정일은 2009년에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돌파구 마련과 체제 단속 및 내부결속 강화를 목적으로 150일 전투를 전개하였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2016년 제7차 당대회를 전후하여 70일 전투와 200일 전투가 진행되었다.

70일 전투는 북한이 2016년 2월 하순부터 5월 초까지 36년 만에 열리는 제7차 당대회(2016.5.6~9)를 앞두고 벌인 노력동원운동이다. 노동신문?은 “경제강국 건설의 돌파구를 열어제낀 승리의 개가”라는 5월 3일자 글에서 “노동 계급이 70일 전투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려 주체혁명 위업수행에서 역사적인 분수령으로 될 당 제7차 대회를 승리자의 대회, 영광의 대회로 맞이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북한은 김정일이 후계자로 내정된 이후 1974년 10월 하순부터 12월 말까지 ‘70일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한편 북한은 2016년 5월 제7차 당대회를 마치고 이 대회에서 제시된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당, 국가, 경제, 무력기관 일꾼 연석회의를 열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수행을 위한 200일 전투를 6월부터 12월 중순까지 진행하였다. 북한은 2016년 200일 전투 기간에 함경북도 지역에서 수해가 발생하여 주민들의 피해가 커지자 대표적 건설과제인 려명거리 건설장을 비롯해 주요 건설장에 투입되었던 인력과 장비를 수해현장으로 재배치하여 수해 복구에 진력하기도 하였다. 북한은 1988년 2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정치국 회의를 통해 같은 해 9월 9일(정권 수립일)까지를 기한으로 200일 전투를 추진했다. 그러나 시한 마감에도 각종 건설공사가 부진하자 북한은 ‘새로운 200일 전투’를 추진하기도 했다.

속도전식 사업의 주요 사례
실시년월 속도전식 사업의 명칭
1974.10 70일 전투
1978.5 100일 전투
1988.2 제1차 200일 전투
1988.9 제2차 200일 전투
2009.4 150일 전투
2016.2 70일 전투
2016.6 200일 전투
평가

속도전? 방식의 경제적 효과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상전에 기초한 속도전? 방식은 북한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동원경제의 성격을 강화하면서 내포적 발전의 필수요인인 창의력에 바탕을 둔 기술혁신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속도전?은 계획의 양적 달성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어 제품의 질 하락, 낭비와 비효율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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