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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식사전

북한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요용어를 그 유래와 의미를 사전방식으로 설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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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혁명소조운동

연구개발과

2022-06-20

조회3,569

3대혁명소조운동?

3대혁명은 사회주의 이후 공산주의를 완성할 때까지 노동계급이 수행해야 할 혁명의 과업으로서 사상·기술·문화혁명으로 나누어진다. 북한에서 ‘3대혁명소조운동?’이란 기존의 혁명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되었던 옛 간부들의 기술실무 수준을 제고하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신비주의를 타파하며, 현대적인 과학기술로 무장하기 위하여 지식청년들을 광범위하게 생산현장으로 결합시키는 운동이다.

배경

3대혁명소조운동?’은 1973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발기되었다. 북한은 그 첫 단계로 1972년 가을 당조직들에서 선발된 당핵심들과 대학생들로 ‘지도소조’를 조직하여 지방의 경공업 공장에 파견하였으며, 이후 이러한 작업을 점차 인민경제의 여러 부문에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당시 북한이 추진하였던 ‘6개년 경제개발계획’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하여 취해진 조치로 과학자, 기술자, 청년, 지식인 등으로 구성된 수십 명 규모의 소조가 지방의 공장이나 협동농장? 등 생산현장에 직접 파견되어 노동자 및 농민을 돕거나 지도하게 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3대혁명소조운동?’을 통한 3대혁명 과제 실현을 주된 목적으로 하였으며, 이를 통해 당시 침체된 북한 사회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주요 내용

3대혁명소조운동?’의 공식적인 발기 이후 북한은 3대혁명소조 구성원들의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당원, 국가경제기관 종사원, 근로단체 종사원 그리고 과학기술자, 지식청년 등까지 점차적으로 포함시켰다.

초기에는 특정한 운동의 지도체계가 마련되지 못했으며, 주로 김일성의 교시와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에 대한 현지지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의 ‘친위대’, ‘근위대’의 역할을 부여받은 소조원들이 주도하는 직접적인 지도 방식은 기존의 각 지역에 존재하였던 당, 행정, 경제 분야의 간부들을 위축시키고 위계질서가 흔들리는 부작용을 야기하였다.

이후 1974년 2월, 북한의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운동?’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3대혁명소조를 당중앙위원회가 통일적으로 지도한다는 새로운 조치를 발표하였다. 또한 1975년 3월에는 중앙과 도, 시, 군에 있던 3대혁명소조 종합실을 당중앙위원회의 산하 기구인 3대혁명소조 지휘부로 개편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3대혁명소조운동?’은 북한이 기존에 추진하였던 대중동원 운동과 명백히 구별되는 구조적인 특징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지도방식이다. 이전의 지도방식은 사상검열이나 경제와 관련된 지도 중 한 쪽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였으나, 3대혁명소조의 지도는 정치사상적 지도와 과학기술적인 실무적 지도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둘째는 지도소조원의 파견 규모와 그 시기이다. 이전의 동원운동들은 대부분은 짧은 기간에 소규모의 지도인원을 파견하여 그 지속성이 약했으나, ‘3대혁명소조운동?’은 대규모의 인원이 장기간 머무르며 지도하도록 했다.

이러한 ‘3대혁명소조운동?’의 기능적인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그 목적을 보수주의, 경험주의, 관료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상 타파에 두고, 이를 통해 기존의 당·행정 관료들에 대한 정치사상적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김정일의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3대혁명소조의 당위성과 이론적 전개, 그리고 그 실제적 성과를 김정일의 지도력과 결부시킴으로써 김정일의 후계자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활용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도 ‘3대혁명소조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2013년 2월 ‘전국 3대혁명소조원열성자회의’를 열고 김정은의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3대혁명소조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는 저작을 강조하며 ‘3대혁명소조운동?’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특히 김정은 시대 들어 과학기술과 그에 기초한 자력자강이 강조되는 가운데 3대혁명소조원들을 새 세기 산업혁명의 척후병으로 칭송하고 생산현장에서 이들이 이룩한 창의와 혁신 활동들도 각종 매체를 통해 선전하고 있다.

평가

3대혁명소조운동?’은 정치사상적 지도를 통한 ‘사상혁명’을 촉진하여 당조직의 역할과 행정기관인 내각(구 정무원)에 대한 당의 통제를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이후 북한의 유일지도체계 형성의 사회정치적 토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3대혁명소조운동?’이 김정일의 후계체제 확립에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1974년 2월 정치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김정일은 ‘3대혁명소조운동?’을 직접 지도하였으며, 김정일의 지도 이후 당에 입당한 3대혁명소조원이 1만 1,600여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김정일 후계구축과 ‘3대혁명소조운동?’이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단되었던 북한의 ‘3대혁명소조운동?’은 2011년에 재개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3년 2월에는 3대혁명소조 전국회의를 30여 년 만에 개최하였다. 이는 ‘3대혁명소조운동?’이 김정은 체제의 안정화와 공고화에도 활용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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