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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걷기 행사후기

디. 엠. 지. ...갈 수 없는 길

이옥선

2021-11-16

조회264

한탄강을 따라서 걸었다.

연천 열쇠 전망대에서 시작한 길이

서로 퍼부어댄 총탄 재가 산을 뒤덮어 백마처럼 보였다는 가슴 아픈 백마고지를 지났다.

늦가을 연보라빛 들국화 두어송이 바람에 건들거리는 쓸쓸한 월정리 역 벤치에 앉아 보고 ,

지금은 갈 수 없는 철길이 끊어진 금강산 철도 다리 아래 애닯은 강물을 바라 보았다 .



용양보를 지나고 안동철교를 지났다.

거대한 평화의 댐 난간에 기대 어 서서

저 아래 물 가두어 놓은 댐과 깊고도 높은 이백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벽을 내려다 보니

어질어질 멀미가 나면서 발바닥이 붙어 버린듯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고 숨이 막혀 왔다.



아름답고 슬픈 가을의 두타연에서 라면 밥으로 점심 요기를 하면서

자꾸만 목이 메여 꺽꺽 거려지는 것은

바람 불어 추운 늦 가을 계절 탓만이 아니었다.

굶고 있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시 철책 너머에 두고

멸치며 김이며 아몬드며 쵸코렛이며 커피를 싸 들고 온 것이 부끄러웠다.

발이 아플까봐 발가락과 발 바닥에 스포츠 테이프를 감아 바른 것도 부끄러웠고

추울까봐 오리털 파카를 챙겨 입은 것도 부끄러웠다.

면목이 없어 무거운 마음이 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매끈하고 하얗게 큰 키의 지작나무 울창한 숲을 지나

대암산 , 도솔산 , 만대봉, 돌산령이 병풍 처럼 바람을 막아주는

이제는 평화로워 보이는 펀치볼을 내려다 보았다.



발이 푹푹 빠지는 갈참 나무 낙엽을 발로 툭툭 차면서

먼맷재를 넘어서

간성의 장신리에서 인제 홍천장으로 팔려가는 소들이

똥을 싸고 넘어 갔다던 소똥령 마을에서 더운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건봉사의 불이문 기둥의 총탄 자국을 만져 보고,

상류 어디쯤에서 강바닥을 긁어내는 공사를 하는지

흙탕물이 얕으막하게 고여 있는 송강 저수지를 지났다.



민통선의 안 쪽으로 들락 날락 걸으면서

가까이 보이는 나무 베어버린 민둥산과

남방 한계선과 디엠지 말뚝과 북방한계선의 철조망을 보았고

걷는 길 내내 목이 메이고 서러웠다.



길.

목이 메이고 눈물이 차 올라 부옇게 이어지는 길.

왜 이렇게도 서럽고 아플까.



황해도 연백에서

가라앉을 만큼 아우성 치는 사람을 가득 실은 나룻배를 타고 연평도로 피난을 오신 고모님.

데리고 온 여섯 아이를 다 먹이기가 힘들어서

다시 밤을 도와 배를 타고 장연 땅의 친정에 두 아이를 맡기고

반드시 데리러 오겠다고 우는 아이들을 친정 어머니께 맡기고

고이춤에 찔러 넣어 주는 어머니의 금가락지를 받아 들고

어두운 그믐밤 다시 배를 타고 옹진 반도를 건너 오셨다.

사람을 가득 실어서 금방이라도 가라 앉을듯이 뱃전을 넘어 올듯 파도가 넘실거리는데,

'엄마 가지마 .나도 갈거야 ' 하고 울며 매달리는 북에 떼어 놓고 온 두 아이보다

연평도에서 울며 배 곯고 기다릴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는 고모님.



그 모진 한을 마음 깊이에 묻고

이산 가족 찾기에 아이들 이름을 보내고 테레비젼 앞에서 떠나지를 못하고 지켜보시던 분.

통일이 되어 가면 그 아이들이 살아나 있을까나 .

당신을 알아나 볼까나 잠을 설치시던 분.

한숨과 함께 웅얼거리는 것은

' 지 한 목숨 살자고.... '

'자식을 버리고 ....'

한결같은 후회와 속죄의 말씀이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무거워 지는 회한.

운명이라는 말

전쟁 이라는 말




그분이 가시고 삼십년이 훨 씬 지난 지금 ,

이 나이가 되어

디엠지를 따라서 길을 걸으며

고릿적 이야기가 맴돌아서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자꾸 흐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가 지나면서

연천에서 시작한 길이 철원을 지나고 양구, 인제를 지나고

이제는 고성으로 향하고 있다.




길 바닥 냉이의 얼핏 띤 연 보랏빛 잎사귀가 발에 밟히고,

무우청을 잘라내고 남은 하얀 무우가 바람 부는 밭에 줄지어 남아서 얼어가고

하우스 안에는 시래기를 빨랫줄에 빨래 널듯이

촘촘하고 빼곡하게 널어 놓아서 달렁거리며 말라가고 있었다.




행렬의 앞에서 선도차가

통일 걷기 2021
평화를 걷다 통일을 꿈꾸다

깃발을 나부끼며 길을 안내하고 ,

임 대장이 ' 마스크 착용 ! '

' 우로 밀착! '

' 일렬로! ' 를 외치며 앞장서서 걸었다.




뒤에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부상자나 탈진한 사람을 위하여 간호사가 탄 차가 따라 오고,

농담이지만 KBS, MBC, SBS, EBS, .미국의 NBC, 영국의 BBC 카메라 맨과 기자들까지

밀착 촬영을 하느라고 카메라와 삼발이를 들고

앞 뒤로 뛰어다니면서 분주하게 사진을 찍었다.




숨가쁜 발걸음을 따라

빗방울이 하나씩 듣기 시작헸다.

비 묻은 바람이 쐬아 소리내며

강둑을 덮은 갈잎들을 날아 올려 저만치로 옮겨다가 수북하게 쌓아 놓았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져서 자갈을 뿌리듯이 눈과 입으로 들이치면서 바람과 함께 기승을 부렸다.

우산은 숫제 머리 위에 쓴 것이 아니라 어깨를 싸 안아 얼굴 한쪽으로만 가렸고

비옷은 시끄럽게 비바람에 펄럭거렸다.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와서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꾸루룩 가리며 물이 넘쳐 나왔다


길과 비와 바람처럼 단순한 일 조차도

힘이 드는 길이었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와 대포 소리, 탱크가 지축을 흔들며 지나가는

전쟁의 공포와 소용 돌이 속에서

춥고 배고프고 아이들은 눈물 콧믈 범벅이 되어 여기저기서 울부짖는데

솥단지, 이불 보따리, 쌀보리자루, 옷가지를 이고 지고

계절이 바뀌도록 어디로 떠밀려 가는 지도 모르고 걸었을 피난 길은

얼마나 춥고 얼마나 배고프고 얼마나 무서웠을까.



피난 길에 떠밀려서 그저 아이들 손을 놓칠까봐

부모, 형제 ,이웃이

어디서 헤어지게 되었는지 간 곳을 서로 모르고,

집으로 언제 돌아 갈 수 있을지, 돌아 가기나 할른지

아무른 약속도 희망도 있을 수 없는 피난 길을

우리가 상상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정말 거짓말이다,


철원 평야의 두루미 떼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접었던 하얗고 커다란 날개를 펴고 일제히 날아 올랐다.

선두의 신호를 따라 가는 것처럼 흐린 갈색의 민둥산을 넘어서 한줄로 줄을 지어

산 꼭대기에 보초가 지키는 초소 위를 지나서 ,

그리고 철책을 넘어서 북쪽으로 우아하게 날개짓을 하며 날아 갔다.




토요일이라 뛰노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명파 초등학교 교문을 지나쳐서

이름도 예쁜 명파리 마을을 지났다.



이제 더 이상 갈 수가 없는 길.

통일 전망대에 서서

동해 바다를 빙 돌아 둥글게 아름다운 명사 십리 모래밭과 연무에 쌓인 금강산 봉우리들을 바라다 보았다.

저 멀리로 어슴프레 보이는 금강산,

바위에 부딪치는 가을 바람 묻은 햇살이 하얗게 빛나는 금강산을

오래 오래 바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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