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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지식사전

통일문제와 남북관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요 용어를 찾아보기 쉽게 사전방식으로 배열하여 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놓은 자료입니다.

2015년 발간된 책자의 내용을 웹 버전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책자원본은 자료마당 - 도서/동영상자료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도서 남북관계 지식사전 (2015)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연구개발과

2015-12-31

조회2034

 

1) 연원

  1990년 11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한 및 해외동포 대표들이 모여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결성했으며, 약칭으로‘범민련’으로 불린다. 1990년 12월 17일 범민련 해외본부가 결성되었고, 1991년 1월 25일 범민련 북측본부가 결성되었으나,남측본부는 1991년 1월 23일 일단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 후 1995년 2월 25일 정식 결성되었다. 이에 앞서 1990년 8월 15일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개최된 ‘범민족대회?’에서 남북한 및 해외동포 참가단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을 결성하기로 결의했다

  ‘범민련’은 그 목적을 ‘전민족의 대단결과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활동해 왔으나, 북한의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면서, 이를 위한 선결조건으로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어, 1997년 대법원은 ‘범민련’을 이적단체로 판결하였다.

2) 경과

  남한에서는 1987년 6·29선언 이후 민주화의 진전과 1988년7·7선언으로 각계각층의 통일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1988년 8월 1일 남한에서는 각계 인사 1,014명이 ‘범민족대회?’추진을 발표했는데, 마침 당시 남북연석회의? 소집을 제의하고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하던 북한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본격 추진되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의 민주화로 고조된 통일논의 열기를 활용하는 한편,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대응해서 1989년 평양에서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측을 끌어들여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당초 남북한 및 해외동포가 한 곳에 모여 개최하기로 한 범민족대회?는 우리 정부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하고, 1990년 8월 15일을 계기로 북한과 해외동포 참가단은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남측은 서울 연세대에서 분산 개최하였다.

  북측에서 개최된 1차 범민족대회?에서의 결의에 따라,1990년 11월 19일~20일 베를린에서 남북한 및 해외동포 대표들이 참가한 실무회담이 진행되었고, 여기에서 공동기구의 명칭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으로 정하고 조직 기구와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남·북한 및 해외에 지역본부와 공동사무국을 두기로 했으며, 이에 따라 1990년 12월 16일 해외본부가 재독 작곡가 윤이상을 의장으로 선출했고, 북측 본부는 1991년 1월 25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인 윤기복을 의장으로 선출했다. 남측 본부는 1991년 1월 23일 서울 향린교회에서 결성위원회를 개최하고 준비위원장으로 문익환 목사를 선출했으나, 결성위원회 핵심 인사들이 구속됨에 따라 뒤늦게 1995년 2월 25일 강희남을 의장으로 선출하고 정식 발족하였다.

  ‘범민련’은 남한, 북한, 해외동포를 하나로 묶는 3자 연대조직체 형태를 띠고 있으며, 주요 기구로는 범민족회의, 공동의장단 회의, 해외본부 중앙위원회 연석회의, 공동사무국 등을 설치하고, 산하에 부분별·계층별 조직을 두는 것으로 되어 있다. 범민련 해외본부는 처음 결성 당시에는 베를린에 설치했었으나, 1992년 1월 동경으로 옮겼다. 범민련 산하 조직으로 대표적인 것은 청년학생들로 구성된 ‘범청학련’이다. 1990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회 남측본부 범민족대회?에서 ‘전대협’은 산하에 조국통일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1991년 7월 박성희, 성용승 학생을 베를린에 파견하여 북한 및 해외동포 청년학생 대표들과 회동을 갖고 3자 공동성명서를 채택하였다. 그 후 1991년 2차범민족대회와 1차 청년학생통일대축전을 마감하면서 ‘범청학련’을 범민련 산하에 두기로 결의하였으며, 1992년 3차 범민족대회?에서 ‘범청학련’을 결성하였다.

  범민련은 ‘민족자주, 민족대단결’을 기본 노선으로 하면서,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원칙과 6·15공동선언 정신을 기본 활동 원칙으로 삼는다고 표방하고 있다. 범민련은 평화 및 통일 문제에 대해 범민족회의,공동의장단 회의 등을 통해서 논의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북한이 북측본부를 통해 제시하는 지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범민련은 1990년대에는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렸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상대적으로 활동이 저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여기에는 남측본부가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로 판결을 받은 영향이 크지만,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 간 각 분야의 교류협력이 활기를 띠면서 범민련의 활동 영역이 축소되었고, 북한으로서도 범민련을 활용할 필요성이 그 만큼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이적단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활동하고 있으나 크게 위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범민련 남측본부는『민족의 진로』제하의 기관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북측본부도『우리민족끼리?』(과거에는『민족대단결』) 제하의 기관지를 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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