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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지식사전

통일문제와 남북관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요 용어를 찾아보기 쉽게 사전방식으로 배열하여 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놓은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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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남북관계 지식사전 (2015)

3대 경협사업

연구개발과

2015-12-31

조회4593

 

1) 연원

  ‘3대 경협사업?’은 ‘금강산 관광사업?’, ‘남북 철도·도로 연 결사업’, ‘개성공단 개발사업’을 말한다. 위의 사업들을 ‘3대 경협사업?’이라고 묶어서 부르는 것은 무엇보다 세 사업의 규모가 크고 사업 추진과정에서 남북경협은 물론 남북관계 전반에 미친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 때문이다.

  세 사업 중 금강산 관광사업?이 1998년 11월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남북철도·도로 연결 사업은 2000년 9월부터 착수하였다. 개성공단 개발사업의 경우 논의는 일찍 시작되었으나 실제 사업 착공식은 2004년 6월 30일 개최되었다. 그리고 세 사업은 상호 밀접한 연관성 속에 추진되었다. 세 사업 모두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추진되면서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통해 금강산 육로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사업에 필요한 인원·물자 통행이 가능해졌다.

2) 사업별 추진경과

  ① 금강산 개발사업

  1998년 6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일행이 북한을 방문하여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금강산관광 및 개발 사업에 합의한데 따라, 1998년 11월 18일 금강산관광이 시작되었다. 금강산관광사업은 사업자의 자금난과 관광객 감소 등으로 한때 중단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관광 활성화를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서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었다. 북한은 2002년 11월 13일 「금강산 관광지구법」을 발표하여 금강산을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공사의 진전으로 2002년 12월 12일경부터 육로 관광이 시작됨에 따라 금강산관광사업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와 함께 관광상품 확충 등으로 2005년 6월 금강산관광이 시작된지 6년 만에 누계 관광객 수가 100 만 명을 넘어섰다. 금강산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외금강 지역에서만 이루어지던 것이 2007년부터 내금강 지역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금강산관광은 2008년 7월 11일 북한군의 총격에 의한 남측 관광객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중단되었다. 우리 측은 합동조사 및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확실한 신변안전 보장조치 등을 요구했으나, 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아 현재까지 중단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관광이 중단되기 전까지 금강산 관광지구에는 한국관광공사를 포함, 약 40여 개에 이르는 남측기업과 현대아산 협 력업체들이 특구 개발사업에서부터 골프장, 면세점, 펜션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현지에서 종사하는 남측 인원들과 중국동포들이 약 1,300명에 달했으며, 약 1,000여 명이 넘는 북한 사람들도 북측 기업과 서비스업 종사자, 관광해 설원 등으로 금강산 관광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②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남과 북은 2000년 7월과 8월에 개최된 1차, 2차 남북장 관급회담에서 경의선 철도(서울-신의주) 및 도로(문산-개성)를 연결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후 우리 측은 2000년 9월 18일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공사에 착수하였으나 북측은 착공을 미룬 상태에서 2002년 4월 남측 특사의 방북 시 경의선, 동해선 연결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합의하였으며, 그해 9월 18일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공사 착공식이 거행되었다.

  남북한은 경의선 도로의 경우 2003년 초부터 개성공단 개발 준비를 위한 차량 임시통행을 실시했으며, 동해선 도로도 2003년 2월 11일 임시도로 개통식을 갖고 금강산 육로시범 관광을 실시하였다. 2007월 5월 17일 열차 시험운행을 경의선 문산역-개성역, 동해선 금강산역-제진역 구간에서 실시한데 이어, 2007년 12월 11일부터 경의선 문산-봉동 구간에 화물열차의 정기운행에 들어갔다.

  남북 양측은 2005년 8월 차량운행과 열차운행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발효시켰으며, ‘출입사무소’를 설치하여 도로와 철도를 이용한 인원과 차량, 자재·장비의 통행·통관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한편, 철도·도로 연결사업을 위해 유엔군과 북한군 간 연결공사 지역을 남북 관리구역으로 설정하는 합의가 이루어진데 이어, 금강산 육로관광, 화물열차 정기 운행 등 계기 때마다 남북 군사당국 간 군사적 보장 합의가 이루어졌다.

 

  ③ 개성공단 개발 사업

  개성공단사업?은 2000년 8월 22일 현대아산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간의 합의로 시작되었다. 2003년 6월 30일 1단계 330만㎡ 개발 착공식을 가진데 이어, 2004년 시범단지 9만3천㎡에 대한 분양을 실시하였으며, 2004년 12월 15일 시범단지 입주기업에서 첫 제품 출하가 이루어졌다. 본단지 분양은 2005년 8월과 2007년 6월 두 차례에 나눠 실시되었다.

  개성공단 기반시설은 2005년 3월 16일 남측지역에서 개성공단으로 전력공급이 시작되었으며, 2005년 12월 28일 개성공단과 남측 지역 간 통신이 연결되었다. 도로, 상하수도 등 단지 내 시설 공사는 2007년 6월에 완료되었으며, 2007년 10월 16일 용수, 환경기초시설, 전력·통신 등 개성공단 1단계의 주요 기반시설 공사를 모두 완료하고 준공식을 가졌다.

  우리 정부는 「개성공업지구지원에관한법률」을 제정(2007.5.25)하여 개성공단을 국내 공단과 같은 수준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북한도 2002년 11월 13일 ‘개성공업지구?’를 지정하고 11월 20일에는 「개성공업지구법」을 제정하였다. 또한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 생산제품에 대해 한국산 제품과 동일한 특혜관세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해 오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의 2008년 ‘12·1조치’(육로 통행 제한, 개성공단 상주인원 감축 등으로 2009.8.20 해제),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 잠정 출경차단 조치, 2013년 3월 말~9월 공단 전체 가동 중단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 나가고 있다.

  2014년 12월 말 현재 개성공단에는 총 125개 기업이 입주하여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2014년 12월 말 현재 북한 근로자 5만 3,947명이 개성공단에서 근무하고, 2004년 이후 누적생산액은 총 26억 6,974달러에 달했다. 개성공단사업?은 시작 이후 10년 만인 2015년 8월 누적생산액 30억 달러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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