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9월 남북고위급회담?이 시작되자 북한측은 본격 협의에 앞서 3대 긴급과제?를 우선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전제조건화 했다. 유엔 단일의석 가입, 팀스피리트 군사훈련 중지, 방북 구속자 석방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3차 회담까지는 각기의 입장만 설명하고 본격적인 협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은 1989년 2월부터 8차에 걸친 예비회담을 여는 등 우여곡절 끝에 1990년 9월 4일~7일 서울에서 제1차 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분단 40여년 만에 열린 쌍방의 총리를 대표로 한 고위 당국자 간 대화가 처음부터 순조로울 리는 없었다. 회담 벽두부터 북한은 우리 측이 제안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 초안’의 논의에 조건을 걸었다. ‘3대 긴급과제?’가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기본합의서 초안 토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논의를 주장한 ‘3대 긴급과제?’란 △유엔 단일의석 가입 문제,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훈련의 중지 문제, △방북 구속자 석방 문제였다.
유엔 단일의석 가입 주장은, 당시 우리 측이 유엔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남한의 유엔가입이 실현된다면 이는 북한이 주장해온 ‘하나의 조선?’ 원칙에 배치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연방제 통일방안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다.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주장은 종래부터 되풀이해오던 것으로, 당초 1988년 11월 북한 이 남북고위급 정치군사회담 개최를 제의할 때부터 최우선 협의 사항으로 제기한 상태였다. 방북 구속자 석방 문제란, 대표적으로 문익환 목사, 전대협 대표 임수경 등 남한의 실정법을 어기고 밀입북했던 인사들이 귀환 후 구속된 것을 철회하라는 내정간섭적 내용이다.
북한의 3대 긴급과제?는 우리 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에 우리 측은 평양에서 열린 제2차 회담에서 △대남혁명 노선 포기, △이산가족 고향방문 실현, △경제 교류와 협력의 추진 등 3대 당면 해결 과제를 제시했다. 북한은 우리 측의 ‘대남혁명 노선 포기’ 주장에 대해서는 거칠게 항의하면서도, ‘교류협력 추진’에 대해서는 정치군사 문제와 병행해 포괄적으로 협의하자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 주장했던 ‘3대 긴급과제?’는 현실을 무시한 공허 한 것이었다. 예컨대 유엔 가입 형식을 둘러싼 쌍방의 논쟁은 이미 밖에서부터 결판나고 있었다. 북한이 유엔 단일의석 가입을 한창 주장하고 있을 때, 과거 북한의 최대 동맹국인 소련은 한국과 공식 외교 관계를 열기로 결정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한 방어훈련이며, 불법 방북자 처리 문제도 우리 내부문제로서 북한이 간섭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 ‘3대 긴급과제?’로 인해 남북고위급회담?은 3차 회담까지 남북이 의제와 관련된 각기의 기본입장만 제시하고 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장으로 활용하는데 주력하였을 뿐 본격적인 협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진전을 이룬 것은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후인 1991년 10월 22일에 열린 4차 회담부터였다. 이때부터 ‘3대 긴급과제?’ 주장은 사라지고 북한이 본질문제 협상에 호응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