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국립통일교육원

정부혁신 보다나은 정부

검색어 자동완성
작성하신 검색어로 검색합니다.(새창 열림)

남북관계 지식사전

통일문제와 남북관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주요 용어를 찾아보기 쉽게 사전방식으로 배열하여 그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 놓은 자료입니다.

2015년 발간된 책자의 내용을 웹 버전으로 재구성하였으며, 책자원본은 자료마당 - 도서/동영상자료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도서 남북관계 지식사전 (2015)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연구개발과

2015-12-31

조회3803

 

1) 개요

  1971년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는 특별성명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의했다. 이에 북한 적십자 중앙위원회 손성필 위원장이 답신을 통해 이에 호응해 옴으로써 남북 간에 이산가족 문제가 협의되기 시작하였다. 남북적십자회담?은 20차례의 예비회담을 거쳐 ① 이산가족의 주소와 생사 확인 문제, ②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방문과 상봉 실현 문제, ③ 이산가족의 자유로운 서신거래 문제,④ 이산가족의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문제, ⑤ 기타 인도적 문제 등 ‘5개항 의제’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합의는 아무 것도 없었다.

  1985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 등 총 151명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하는 최초의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 이후 당국차원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진전이 없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산가족 문제 해결 노력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총 20차례 이루어졌으며, 2004년부터 화상상봉을 실시하여 2007년까지 7차례 진행하였다. 2015년 10월까지 당국차원에서 생사가 확인된 이산가족은 남북한 총 57,567명이며, 서신교환도 1차례의 시범실시 600건과 이산가족 상봉행사시 79건 등 총 679건이 성사되었다. 또한 금강산 관광지구내에 이산가족면회소?를 2005년 8월 31일 착공하여 2008년 7월 12일 준공하였다. 한편, 민간차원의 이산가족 교류는 2015년 10월까지 생사확인 3,870건, 서신교환 11,471건, 제3국을 통한 상봉 1,751건이 성사되었다.

  우리 정부는 1998년 이산가족자료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산가족 찾기를 희망하는 신청자를 받아 관리해 오고 있다. 2014년 12월말 기준으로 12만 9,616명이 등록되어 있으며, 이중 6만 1,352명이 사망하고 생존자는 6만 8,264명이다.

2) 경과

  1985년 5월 27일~30일 개최된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및 예술공연단’을 교환 방문키로 합의함에 따라 분단 40년 만에 처음으로 1985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양측 각기 단장을 비롯하여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50명, 예술공연단 50명, 취재기자 30명, 지원인원 20명 등 총 151명이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방문하였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은 바로 중단되었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때까지 15년 동안 당국차원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진전이 없었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에 합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2000년 6월 27일~30일간 개최된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 에서의 합의에 따라 8·15를 계기 로 서울과 평양에서 1,170명의 이산가족이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이후 2000년 9월, 북한 김용순 특사의 남한 방문 시에도 이산가족 문제가 집중 논의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9월 20일~23일간 2차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2차, 3차 방문단 동시교환과 생사주소 확인, 서신교환,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협의 등에 합의하였다. 4차 상봉은 2002년4월 남측 특사의 방북 이후 4월 28일~5월 3일간 이루어졌다.

  4차 적십자회담(2002.9.6~8)에서는 ‘전쟁시기 소식을 알수 없게 된 자들에 대한 생사·주소 확인’ 문제를 협의·해결해 나가기로 함에 따라,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이산가족 문제의 틀 속에서 풀어나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또한 쌍방은 4차 회담 이후 실무접촉을 열어 금강산 면회소를 1,000명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물로 건설하여 운영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러한 합의를 바탕으로 5차 상봉이 2002년 9월 13일~18일간, 6차 상봉이 2003년 2월 20일~25일간 금강산에서 진행되었는데, 여기에 납북자와 국군포로 가족들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5차 적십자회담(2003.11.4~6)에서 남북한은 화상 상봉에 합의하여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새로운 방식이 도입되었다. 화상 상봉은 이산가족중 상당수가 고령으로 장거리 이동이 여의치 않고,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준비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화상상봉은 2007년까지 일곱 차례 실시되어 이를 통해 남북 양측의 3,748명이 만남을 가졌다.

  9차 적십자회담(2007.11.28~12.1)에서 남북은 연간 대면상봉인원 400명, 분기별 화상상봉 40가족과 영상편지교환 30가족 등 상봉규모의 확대와 정례화에 합의했다. 남북은 2008년 2월 5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이산가족 영상편지 교환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각각 20가족씩 영상편지를 교환하였다.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는 2005년 8월 31일 착공식을 가졌으며, 2008년 7월 12일 준공하였다. 2008년 초에 이루어진 영상편지 시범교환 이후 소강상태에 있던 이산가족 교류는 2009년과 2010년, 2014년에 각각 한 차례 더 이루어졌다. 2009년 9월에 실시된 이산가족 상봉은 2008년 완공된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며, 2010년과 2014년, 2015년 이산가족상봉행사도 이산가족면회소?를 활용하였다. 남과 북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해 11월 제9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면회소?를 이용한 상봉 정례화에 합의하였으나, 북측의 소극적 태도로 이행되지 못하였다. 그 후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 중단과 2011년 8월 북한의 금강산 관광지구내 남측 재산 몰수 조치로 이산가족면회소?는 유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 있다.

  우리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로 인식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 등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해 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남북간 협의를 통한 이산가족 문제 해결 노력과 함께 우리 자체적으로 이산가족 교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을 적극 추진해오고 있다.

  정부는 이산가족들의 고령화를 감안하여, 2009년 9월 26일 시행된「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을 토대로, 이산가족 실태 조사, 영상편지 제작, 유전자 검사 등 이산가족 교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민간차원의 이산가족 교류에 대한 지원도 지속적으로 실시해오고 있다. 또한 ‘이산가족교류촉진법’에서 3년마다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산가족 교류촉진 기본계획’을 2012년 7월 30일 처음으로 확정, 발표함으로써, 이산가족 교류를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공공누리의 제 4유형 안내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 표시+상업적 이용 금지+변경 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글 이산가족면회소 연구개발과 2015-12-31
현재글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 연구개발과 2015-12-31
다음글 20개 시범실천사업 연구개발과 2015-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