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계획경제시스템이 정상 작동하는 동안 북한 주민들의 상업 활동은 제한된 범위에서만 허용되었다. 미곡을 포함한 소비재 상품 대다수는 노동자별로 구매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있었다. 농업 활동을 통한 소득이 적었던 농민들 역시 농민시장?에서 직접 재배한 작물을 지정된 날짜에 한해 판매할 수 있었다.

제한된 시장거래와 함께, 북한의 단일은행체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금융제도 또한 주민들이 일상에서 부를 축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약화시켰다. 소련이 최초 도입하고 사회주의 국가에 확산된 이 제도의 핵심은 한정된 자원을 국가의 계획이 원활히 집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의 은행은 대부, 저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은행?의 기능을 중앙은행이 함께 담당한다. 중앙은행의 주된 기능은 생산영역에서 자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개별 기업의 계획집행을 통제하는 것이었기에, 상업영역의 기능은 저축 등의 최소 영역에서만 발휘되었다. 결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부는 국가의 통제영역에 위치하였고, 북한은 1960년대까지 국가주도의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국가의 계획이 정상 작동되지 못함에 따라, 북한의 사회주의금융제도 역시 변화하게 된다. 변화의 발단은 사적 영역에서의 거래를 비활성화 시켰던 배급의 붕괴에서 비롯되었다. 생활필수품을 국가로부터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암시장에서의 거래를 단행한다. 기업소 역시 원부자재 공급에 장애가 발생한 이후 할당된 계획을 충당하기 위하여 비공식영역을 통한 거래를 추진하게 되었다.

사적 영역에서의 교환이 활성화되었으나, 여전히 상업이 중앙은행에 의하여 관리되는 상황에서 시장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달러와 위안화가 중심이 되었다. 국가에 의해 계산되던 화폐의 유통은 국가의 통제 영역 밖에서 확장되었다. 계획 중심의 국가 운영은 불가능해지면서 북한은 시장과 계획이 공존하는 경제체계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금융제도는 「상업은행법」이 제정됨에 따라 국가의 재정영역과 민간의 금융영역으로 이원화된 은행체계로 전환되었다.

주요 내용

북한이 금융제도에서 상업은행?을 공식화한 목적은 2006년에 제정된 법령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법에 규정된 상업은행?의 업무는 12가지로, 예금, 대부, 돈자리(계좌)개설, 국내결제, 대외결제, 외화교환, 신용확인 및 보증, 채권 발행, 귀금속 거래, 고정재산(생산수단)등록, 환전 및 기타 승인업무 등이다.

위 공식 업무 가운데 가장 중요도가 큰 업무는 예금이다. 북한은 상업은행?의 예금업무의 목적이 “유휴화폐자금의 적극 동원”이라고 명시하였는데, 이를 토대로 북한은 노동자들의 건전한 생활기풍 확립은 물론 추가 수입 확보를 통한 인민생활향상효과를 강조하고 있다(광명백과사전, 2010). 결국, 고난의 행군? 이후 사적 영역에서 유통되는 화폐를 국가로 귀속시키고, 이를 토대로 국가 경제 운용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상업은행?을 형식적으로 공식화하는 북한 당국의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상업은행?은 무역 등 대외금융업무를 주로 수행하는 국가상업은행과 국내의 민간금융업무를 담당하는 지역상업은행으로 구분되며, 별도로 외국투자은행으로 합영은행과 외국인은행으로 나뉜다.

북한의 은행체계(2016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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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김민정 외, 『김정은 시대 북한의 금융제도 변화: 북한 문헌 분석을 중심으로』(서울: 한국은행,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