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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통이 현장스케치

통일리더캠프① : 또하나의 가족을 찾아, 연변과 두만강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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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리더캠프① : 또하나의 가족을 찾아, 연변과 두만강 편

나눔선

해당 기사는 통일교육원의 공식 입장이 아닌 제11기 통일부 대학생기자단의 기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제11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유니콘 권정우입니다! 7월 9일부터 7월 15일까지, 북중접경지역 인근을 탐방하는 '2018 통일리더캠프(국외)'가 열렸습니다! 10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 국내 통일리더캠프 수료자, 통일교육원 소감문 공모전 입상자 등 각지에서 모인 통일을 염원하는 대학생들이 이번 캠프에 참여했습니다. 7월 9일 서울에서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7월 10일 중국에서의 첫날 모습을 전해드리겠습니다!

2018 통일리더캠프(국외) 1일차 경로 (출처: 2018 통일리더캠프 책자)

△ 2018 통일리더캠프(국외) 1일차 경로 (출처: 2018 통일리더캠프 책자)

첫날, 여행을 시작한 곳은! 바로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옌지(연길, 延吉)시와 투먼(도문, 图们)시입니다. 중국의 동북3성(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 중 유일하게 북한과 러시아, 두 나라와 맞닿은 곳입니다. 그 중에서 조선 말기부터 계속해서 우리 동포들이 이주해 간 곳이 바로 옌볜입니다. 함경도나 평안도 등 북한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경상도나 전라도 등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서 큰 동포 집성촌이 되고, 이후 ‘조선족 자치주’로서 지위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와 분단된 지금까지도 만주에서 생활을 일구었던 그곳, 옌볜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머나먼 만주에서 본 우리 민족

인천공항 출발 직전 항공기 외부 모습과 연길조양천국제공항 정면 모습 (출처: 권정우)

△ 인천공항 출발 직전 항공기 외부 모습과 연길조양천국제공항 정면 모습 (출처: 권정우)

7월 9일 오리엔테이션을 함께 마무리하고, 인천공항에 모인 통일리더캠프 참가자들! 약 2시간 동안 비행을 마치고 중국 옌지(延吉) 차오양촨 (연길 조양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연변 시내 전경과 연변의 백화점 모습 (출처: 권정우)

△ 연변 시내 전경과 연변의 백화점 모습 (출처: 권정우)

시내의 풍경을 보면서 한글중국어(한자)가 함께 활용된 것이 가장 눈에 들어옵니다. 자치주 내에서는 상호명을 반드시 병기해야하며, 한글을 한자의 ‘오른쪽’이나 ‘위쪽’에 표기를 해야 합니다. 처음에 봐서는 무슨 회사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지만, 중국에서 만난 한글에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1일차 점심 식사 (출처: 권정우)

△ 1일차 점심 식사 (출처: 권정우)

조선족 자치주에서 처음 와서 먹은 식사는 다름 아닌 우리의 ‘한식’이었습니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반찬이 많았고, 맛도 매우 달랐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점보다 김치나 불고기 등 한 눈에 보이는 공통점들이 더욱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재중동포의 식당에 북한 종업원이 있고, 한국에서 온 우리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 하나의 민족을 한 끼 식사에서 엿볼 수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운 내 ‘님’은 언제나 오려나

'두만강변경'이라 불리는 두만강의 북중접경지역으로 먼저 출발했습니다. 두만강은 길이가 521km, 유역 전체 면적은 41,242제곱킬로미터. 서쪽 경계인 압록강보다는 작지만 북한, 중국, 러시아 삼국의 경계가 되는 강이 바로 두만강입니다. 백두산 대연지봉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마천령, 함경산맥 등의 지류들과 함께 만나 동해로 흘러내리면서, 백두산과 동해 바다를 잇는, 우리 민족에겐 중요한 생활 터전인 강입니다.

투먼시 두만강광장 내 두만강변경과 두만강, 북한 남양시 조망 사진 (출처: 권정우)

△ 투먼시 두만강광장 내 두만강변경과 두만강, 북한 남양시 조망 사진 (출처: 권정우)

이번에 다녀온 투먼시의 ‘두만강광장’은 두 나라의 경계라고 보기에는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산책을 나온 시민들은 물론 자전거를 타러 나온 아이들까지 북적였습니다. 그러한 광장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바라본 북한의 도시는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남양시)’. 2016년 큰 홍수가 나서 이를 복구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보였지만 그곳 역시 매우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이 두 나라를 가로 지르는 강은 날씨가 가물어서 물이 적었기에, 더욱 북한은 가까운 곳으로 보였습니다.

두만강을 배경으로 한 ‘눈물 젖은 두만강’. 재중동포 가이드의 이야기로는, ‘두만강 이북으로 넘어간 독립운동가의 아내가 자신의 남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이야기를 곡으로 담아내 불렀다고 합니다. 실제로 1938년, 일제 강점기 시절 발표된 노래로 당시에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만주에서의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며 불렀다는 것을,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 1절 가사 中>

당시의 ‘님’은 우리의 독립이었겠지만, 이제는 분단된 민족을 뜻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만강이 당시에 한반도에서의 우리 민족과 독립과 생계를 위해 나간 만주의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다면, 이제는 반대편에서 건너지 못하는 강을 보며 분단의 아픔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독립을 위한 투쟁, 봉오동 전투

봉오동전적비가 있는 봉오저수지 입구와 '봉오골반일전적지'의 봉오동전적비 (출처: 권정우)

△ 봉오동전적비가 있는 봉오저수지 입구와 '봉오골반일전적지'의 봉오동전적비 (출처: 권정우)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 우리 역사를 배울 때 만주 항일 운동을 배우면 빠지지 않는 두 전투입니다. 그 중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 등의 독립군 연합부대가 모여 일본 제19사단의 한 대대를 상대로 승리한 전투입니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의 독립군이 점점 성장했고 이러한 결과물들을 얻을 정도로 독립에 대한 열망이 커졌습니다. 비록 간도 사변과 자유시 참변을 거쳐 주춤했지만 만주에서의 독립운동과 소식들은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건넸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봉오동전적비’와 봉오동. 기대했던 것에 비해 매우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현재는 ‘봉오저수지’ 안에 전적비가 있고, 그 흔적들은 수몰되어 볼 수 없었습니다. 같이 동행한 통일교육원 김진환 교수도 ‘한중 수교가 늦었고 이러한 부분을 잘 챙기지 못해 아쉽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함께 독립을 위해서 회의하고 산을 뛰어다니며 일본군들을 상대했을 모습을 그리며 함께 그때의 투쟁과 아픔을 새겨봤습니다. 일본군을 무찌르기 위해 많은 독립군들이 뭉쳤고 그들이 ‘하나’가 되어 싸웠던 그때의 마음을 직접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갈라진 민족, 다시 만나기 위해

연길 시내의 야경 모습 (출처: 권정우)

△ 연길 시내의 야경 모습 (출처: 권정우)

첫 날의 연변과 연길시는 독립의 기억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입니다. 이곳에 사는 많은 재중동포는 예전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 독립 자금과 독립 활동을 위해 만주로 온 독립군들의 후손들입니다. 봉오동 전투가 있던 곳, 윤동주가 어린시절 있었던 용정까지 독립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하지만 분단은 민족을 두 갈래가 아닌 여러 갈래로 나눴습니다. 재중동포들은 자신의 민족이 두 갈래의 나라로 나뉘는 것을 보면서 힘들어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은 중국인인가, 북한에 가까운가, 남한에 가까운가?” 북한과 남한, 모든 곳을 갈 수 있지만 어느 곳에 자신이 속해야 하는지를 언제나 고민해왔던 것입니다.

재중동포 가이드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재중동포(조선족)은 어머니(북한)가 낳아주시고 아버지(남한)가 키워준 사람들이다.’ 교육은 북한의 ‘문화어’에 가깝게 배우고 북한과 가까운 여러 특성이 있지만, 남한과의 교류가 점점 경제력 등을 이유로 늘어나면서 많이 남한에 가깝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정체성이 충돌하면서 변화하고 있지만, 민족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이어 나가고자 하고 있다는 재중동포들이 많이 있습니다.

“독립된 나라를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가들이 과연 분단된 나라를 바랐을까?” 오리엔테이션 중 통일교육원 김진환 교수가 남긴 말입니다. 분단된 나라를 바라지 않았을 만주의 사람들이, 지금은 갈라진 민족을 보면서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신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떨어진 ‘또 하나의 가족’을 이어줄 통일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11기 통일부 대학생 기자단(유니콘) 박정후 기자

통일리더캠프1 또하나의 가족을 찾아, 연변과 두만강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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